영화 리뷰+ㅣ '항거:유관순 이야기' 패배주의 걷어낸 승리의 역사

입력 2019-02-20 10:56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많다. 보고 난 후 찜찜함이 감도는 작품도 많았다. 일본의 침략, 그리고 지배는 분열된 민족과 무능한 권력층 탓이라는 인식은 가슴 아팠던 역사를 더욱 암울하게 했다. 하지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는 그런 불편함을 완전이 걷어냈다.

'항거'는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후 1년의 이야기를 다뤘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재학 중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고향 병천(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을 주도해 벌이다 수감됐다.

교과서엔 "갖은 고문 끝에 옥중 사망했다"는 한 줄의 이야기를 '항거'는 105분의 러닝타임 동안 담담하게 풀어냈다. 유관순 역을 맡은 고아성도 "예상했던 일대기가 아닌,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서 살았던 1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면서 출연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흑백으로 촬영한 화면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는 장치가 됐다.

유관순(고아성 분)이 손과 발에 족쇄를 차고, 서대문 형문소에 들어와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수감번호 371번. 퉁퉁 부은 눈에서도 눈빛이 빛나는 유관순이었지만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낯선 환경에 두려움도 느꼈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 25명이 생활하던 여옥사 8호실은 이전까지 유관순이 보도 듣도 못한 곳이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25명의 수감자들은 똘똘 뭉쳤다. 이화학당에 함께 재학하던 선배, "망할 만세 운동,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는 이웃집 아주머니도 있었다. 기생, 다방직원, 만삭의 엄마까지 25명의 사연 또한 다양했다. 이들은 주먹만한 밥 한뭉치도 나눠먹고, 다리를 붓지 않게 하기 위해 서로를 응원하며 비좁은 8호실을 원을 그리며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지칠 땐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너희끼리 싸워서 망한 것"이라는 사상을 주입하려고 했던 일본은 이를 용납하지 못했다. "조용히 하라"는 간수에게 "우린 개구리가 아니다"고 외친 유관순이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유였다.

유관순의 고문 장면은 알려진 것 보단 덜어낸 듯 보였다. 그럼에도 충분히 끔찍했다. 여성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벌이는가 하면, 관을 연상케하는 나무 상자에 가둬 두고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 서서히 썩어가게 만드는 것.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끼지 못하는 형무소에서 3.1 만세운동 1주년을 챙겼던 유관순에겐 더 끔찍한 고문이 이어졌다. 손톱 끝에 대나무를 쑤시고, 이를 벌리는 등의 행동이 자행됐다.

유관순을 고문하고 감시했던 조선인 출신 헌병 니시다(류경수 분)가 "조금만 비겁하면 되지 않냐"고 유관순에게 물었다. 또 다른 조선인 수감자도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다. 고문과 폭행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유관순이 답했다. "그럼, 누가 합니까?"

해가 바뀌고 일본 천황 부부의 결혼을 기념해 죄수들의 수감 기간이 절반으로 줄면서 8호실에 투옥됐던 25명 중 24명이 석방됐다. 대부분 1년 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 3년 형의 유관순만 남았다. 그럼에도 유관순의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혼자서라도 끝까지 항거했다.

일제 시대는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이 중엔 역사 왜곡이 불거지는 작품들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다면서 나쁜 행동을 하는 조선인을 그저 나쁜 사람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항거'에서는 유관순을 밀고했던 수용자에게 조차 "왜 조선인이 나쁘냐, 그렇게 만든 왜놈들이 나쁘지"라고 지적한다. 가슴아픈 역사, 그럼에도 피와 눈물을 쏟으면서도 끝까지 의지를 지켰던 우리 조상들과 그들을 끊임없이 흔들려 했던 제국주의의 만행이 가슴 아프지만 속시원하게 풀어지는 영화다.

12세 관람가. 오는 27일 개봉.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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